경복궁 경회루 야간개장....

경복궁. 경회루 야간개장....

이형일 2018. 10. 3. 17:39


경복궁(景福宮). 경회루(慶會樓)   야간개장....



경복궁(景福宮)

 

사적 제117.

현재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정궁(正宮)에 해당하는 것으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궐(北闕)로도 불린다.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경복궁(景福宮)을 만드는 일이었다.

1394(태조 3) 124일 시작된 이 공사는 이듬해 9월 중요한 전각(殿閣)

대부분 완공되었다.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이곳에 왕들이 머문 기간은 1405(태종 5)

지어진 일종의 별궁인 창덕궁(昌德宮)에 비해 훨씬 짧다.

 

세종·문종·단종이 이곳에 주로 기거했으며, 왕자의 난으로 인한 개성천도

기간 동안 빈 궁궐이었다.

경복궁은 남쪽으로는 광화문이 있고, 북쪽으로는 홍예문, 내부에는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같은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요. 이 건물들은 임금이 외교 사절을

맞아들이던 곳, 임금과 신하들이 나랏일을 보던 곳, 임금과 왕비가 생활하던

곳으로 나뉘어 있지요.





경복궁 경회루(景福宮 慶會樓 )

 

국보(國寶) 224. 정면 7, 측면 5칸의 중층(重層) 팔작지붕건물.

근정전(勤政殿) 서북쪽에 있는 방형 연못 안에 세운 이 建物은 나라의

경사(慶事)있을 때 연회(宴會)를 베풀기 위한 곳이었다.

外國 使臣의 접대(接待)와 연회(宴會)를 베풀던 곳으로 現在建物

1867(고종 4) 다시 지은 것이다

경회루(慶會樓)는 경복궁(景福宮)의 유휴(遊休) 공간으로, 나라에 경사(慶事)

있거나 사신(使臣)이 왔을 때 연회(宴會)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했던 누각(樓閣)이다.

처음 지었을 때는 규모가 작았으나 태종 에 증축(增築)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물론 지금 건물(建物)은 고종 때 다시 지은 것이지만 규모와 제도는 옛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준 비운의 현장이었으며,

연산군이 방탕하게 놀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곳 또한 여기였다.

임진왜란으로 돌기둥만 남긴 채 타버린 경회루(慶會樓)270여 년이 지난

고종 4(1867)에 경복궁(景福宮) 재건과 함께 다시 태어났다.

긴 돌로 둑을 쌓아 연못 속에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다.

간결하면서도 호화로운 미감이 탁월하다.

단일 평면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樓閣)건물이다.

이와 같이 거대한 규모의 건물을 무리없이 견고하게 가구한 점과 물속에

세웠으면서도 그 기초를 견고히 하여 둔중(鈍重)한 건물이 잘 견디게 처리한 점,

거대한 건물을 이익공의 간결한 양식으로 처리하면서도 연회(宴會)장소로

부합(符合)되도록 호화롭게 잘 치장한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근정전(勤政殿)

 

국보 제223.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정전(正殿)으로,

때로는 사신(使臣)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양로연(養老宴)이나

위로연(慰勞宴)을 베풀기도 하던 곳이다.

 

1395(태조 4) 지은 건물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불타버리고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된 것이다. 2층의 목조건물로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