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景福宮). 경회루(慶會樓) 야간개장....
경복궁(景福宮)
사적 제117호.
현재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정궁(正宮)에 해당하는 것으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궐(北闕)로도 불린다.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경복궁(景福宮)을 만드는 일이었다.
1394년(태조 3) 12월 4일 시작된 이 공사는 이듬해 9월 중요한 전각(殿閣)이
대부분 완공되었다.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이곳에 왕들이 머문 기간은 1405년(태종 5)
지어진 일종의 별궁인 창덕궁(昌德宮)에 비해 훨씬 짧다.
세종·문종·단종이 이곳에 주로 기거했으며, 왕자의 난으로 인한 개성천도
기간 동안 빈 궁궐이었다.
경복궁은 남쪽으로는 광화문이 있고, 북쪽으로는 홍예문, 내부에는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같은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요. 이 건물들은 임금이 외교 사절을
맞아들이던 곳, 임금과 신하들이 나랏일을 보던 곳, 임금과 왕비가 생활하던
곳으로 나뉘어 있지요.
경복궁 경회루(景福宮 慶會樓 )
국보(國寶) 제224호.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重層) 팔작지붕건물.
근정전(勤政殿) 서북쪽에 있는 방형 연못 안에 세운 이 建物은 나라의
경사(慶事)가 있을 때 연회(宴會)를 베풀기 위한 곳이었다.
外國 使臣의 접대(接待)와 연회(宴會)를 베풀던 곳으로 現在의 建物은
1867년(고종 4) 다시 지은 것이다
경회루(慶會樓)는 경복궁(景福宮)의 유휴(遊休) 공간으로,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거나 사신(使臣)이 왔을 때 연회(宴會)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했던 누각(樓閣)이다.
처음 지었을 때는 규모가 작았으나 태종 代에 증축(增築)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물론 지금 건물(建物)은 고종 때 다시 지은 것이지만 규모와 제도는 옛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준 비운의 현장이었으며,
연산군이 방탕하게 놀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곳 또한 여기였다.
임진왜란으로 돌기둥만 남긴 채 타버린 경회루(慶會樓)는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에 경복궁(景福宮) 재건과 함께 다시 태어났다.
긴 돌로 둑을 쌓아 연못 속에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다.
간결하면서도 호화로운 미감이 탁월하다.
단일 평면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樓閣)건물이다.
이와 같이 거대한 규모의 건물을 무리없이 견고하게 가구한 점과 물속에
세웠으면서도 그 기초를 견고히 하여 둔중(鈍重)한 건물이 잘 견디게 처리한 점,
거대한 건물을 이익공의 간결한 양식으로 처리하면서도 연회(宴會)장소로
부합(符合)되도록 호화롭게 잘 치장한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근정전(勤政殿)
국보 제223호.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정전(正殿)으로,
때로는 사신(使臣)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양로연(養老宴)이나
위로연(慰勞宴)을 베풀기도 하던 곳이다.
1395년(태조 4) 지은 건물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불타버리고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된 것이다. 2층의 목조건물로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