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무학재 하늘다리....

안산(鞍山)"무학재하늘다리"

이형일 2018. 3. 28. 20:00

무악재 모래재, 사현, 길마재, 무학재, 무학현, 추모현 (毋岳峴)


무악재는 안산(鞍山, 296m)과 인왕산(仁王山, 338m) 사이에 있으며,

의주가도(義州街道)인 국도 1호선이 지나고 있다. 안산과 인왕산은 화강암 산지이고,

무악재는 두 산 사이에 형성된 안부(鞍部)이다. 무악재는 여러 번에 걸쳐 깎여

고개가 점점 낮아졌다. 지금은 지하철 3호선이 통과한다.

 

무악재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에는 모래재

또는 사현(沙峴)이라고 불렸다. 또 말안장 같은 안산 기슭을 따라 넘는

고개라고 하여 길마재라고도 불렸다.


 


무악재라고 불리게 된 것은 조선 초기에 도읍을 정하면서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 삼각산(三角山)의 인수봉이 어린 아이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라고 하여 이것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안산을 어머니의 산으로

삼아 무악(毋岳)이라 하고, 이 고개를 무악재라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별칭으로 무학재 또는 무학현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성계가 하륜(河崙)

건의에 따라 무악의 남쪽을 도읍으로 정하려고 하였으나 일부에서 명당이

좁다고 반대를 하였고, 결국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의견에 따라 북악산 밑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영조는 부왕 숙종의 능인 명릉(明陵)의 역사를 시작하고, 이 고개에 올라서서

명릉을 바라보며 고개의 이름을 추모현(追慕峴)이라고 하였다.

명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서오릉 안에 자리잡고 있다.









무악의 정상에는 조선시대의 봉화터가 두 군데 있다.

이곳의 봉화대는 평안도·황해도는 물론, 부산·회령까지 급보를 전하였다.

무악재는 조선시대에 의주와 통하는 주요 교통로였고, 지금도 서울 시내와

서대문 외곽을 연결하는 주요 고개이다.

 

조선시대부터 의주를 비롯해 황해도·평안도와 한양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특히 명·청의 사절들이 들어오는 길목의 관문구실을 했고 고개 아래 현저동에는

영취락이 발달했다.



*무학재 하늘다리는 길이 : 80m  폭 : 11.7m


현재 독립문(사적 제32) 자리에는 중국 사절단의 영접을 위한 모화관과

영은문(사적 제33)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의 가장 큰 내란인 이괄의 난이

종결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고개 정상에는 평안도·황해도는 물론

부산·회령·의주까지 급보를 전했던 옛 봉화터가 2군데 남아 있다. 이 고개는

가파르고 길목이 좁았으며, 도적과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10명 이상이

모여야만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오랜 침식작용으로 고개가 낮아지기는 했으나, 겨울철에는 눈이 조금만

내려도 교통 소통에 장애가 있다. 주변에 있었던 서대문 구치소는 의왕시

고일동으로 이전되었고, 그 터가 1991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